산 행 일: 2012,7,1[일]약간구름
산 행 지: 용문산(1,157m)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1리
산행코스: 용문사주차장- 군 유격장-능선-묘지-전망대-용문봉(915m)-용문산 정상-능선-계곡길-마당바위-용문사-주차장
산행시간: 10:10~16:30 6시간20분
긴 가뭄끝에 단비가 전날 하룻동안 많은 비가 내렸다
메말랐던 대지 위에 촉촉함에 느껴지고 그러나 산행하는 우리로선 최악이다...ㅎㅎ
습기가득...스쳐지는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땀인지 물인지 처음엔 구분이 가지않을 정도였다
오늘은 용문산을 다른코스로 올라볼까 하며 찾았는데 양평에 사는 친구를 양평에서 합류하여..
용문봉을 거쳐 오르기로 하고 용문산으로~~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는 해발 900미터 전후의 여러 산들이 한군데 모여 있다.
최고봉인 용문산은 해발 1157미터 이고 이 곳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여러개의 산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잡고 있다.
남으로 백운봉, 함왕봉, 장군봉 북으로 용문봉, 폭산, 용조봉, 중원산, 도일봉 등 일련의 산들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경기도 최고의 산행지로 손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정말 훌륭한 곳이다.
이 부근 산들은 어느 코스로 산행을 하건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되고
산속에 들어서면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숲이 우거지고 계곡은 수량이 풍부하고 깨끗하다.
전체적으로 흙산인 이 부근 산들은 위험할 정도로 험악한 바위구간이 곳곳에 있어 결코 만만치 않다.
위험한 바위코스로는 백운봉 일대, 용문봉 정상부, 용조봉 정상부등을 들 수 있으나 최고의 험난한 코스는 용문봉과 용조봉 이다.
이 두 봉우리는 안전시설도 없을뿐더러 온통 바위뿐인 험난한 구간이다.
겨울철이나 우천시 자칫 추락으로 이은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이 능선을 타고 정상부를 밟았다가 되 내려오는 경우이기 때문에 교행이 어려운 협소한 바윗길에서의 정체는 당연한것이다.
상당수의 등산객은 미처 정상부를 밟지도 못하고 지쳐서 내려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결코 용문산을 만만히 보고 산행을 해서는 안된다.
그만큼, 어린이나 노약자, 평소 산행을 많이 하지 않은 분들은 섣불리 용문산에 도전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개전투로 이곳에서 만나기로 ...
수원서 올라오고 나는 인천에서 시외버스로 1시간10분 소요 예상시간보다 빨리온다
그리고 양평친구..를 만나 용문사로 이동~
주차장에서 용문사 매표소길 주변 식당 뒷편에서 산행이 시작되고~
군 훈련장을 피해서...
때로는 가로 지르고~
옛 시절 추억도 드듬어 보기도 한다...ㅎㅎ
가파른 오름이 시작되면서... 어제 내린비로 습기와 싸움이...ㅠㅠ
의외로 칼바위 느덜길이다...
이정표가 없다보니 흔적 찾기가 애매모 한곳은 그냥 넘고 ..
젖은 암릉에 이끼까지..매우 미끄럽다..
그나마 기맥꾼들이 남기고간 시그널이 가끔 눈에 띄기도한다
오르락~ 내리락 즐거움을 주면서 상당히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었다
용문봉 정상석은 없었지만 이곳이 정상부였다
용문봉에서 바라본 용문산 정상 운무에 가려져 있네요~
용문사(龍門寺)
신라 신덕왕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 한다. 고려 우왕4년(1378)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세종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성종11년(1480) 처안스님이 중수한 뒤 고중30년(1893) 봉성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순종 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들이 불태웠다. 1909년 취운 스님이 큰방을 중건한 뒤 1938년 태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요사 등을 중건하였으며 1982년 선걸 스님이 주지로 취임하여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 일주문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경내에는 권근이 지은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 부도 및 비와
천연기념물 제 30호인 은행나무가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
이 나무는 현재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들 중에서 가장 크고 우람하며 오래 된 것으로 용문사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다. 나이가 약 1,100여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60여미터에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가 12.3m를 넘어 동양에서는 가장 큰 은행나무이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敬順王)이 그의 스승인
대경 대사를 찾아와서 심은것이라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세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高僧)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많은 전란으로 사찰은 여러번 피해를
입었지만 특히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의병의 본거지라하여 사찰을 불태워 버렸으나 이 은행나무만은 불타지 않고 살아 남았던 나무라하여 천왕목(天王木)
이라고도 불렀고 조선 세종(世宗)때에는 정3품(正三品)의 벼슬인 당상직첩(當上職牒)을 하사(下賜)받기도한 명목(名木)이다. 이 나무에는 또한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을 때 톱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이 일어났기 때문에 중지하였다하며
또한 나라에 큰변이 있을 때 소리를 내었다고 하는데 고종이 승하하였을때에는 커다란 가지가 1개 부러졌고 8.15해방과 6.25사변때에도 이 나무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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